본문 바로가기
🎨 LA 예술 & 자연 여행 그리고 가이드

[실버레이크 산책기] 흐린 날, 꽃과 물가에서 찾은 봄날의 위로

by joibox 2025. 5. 4.
반응형

"실버레이크 주말 꽃 트럭 앞에 진열된 다양한 봄꽃" 사진
"실버레이크 주말 꽃 트럭 앞에 진열된 다양한 봄꽃"

 

🌿 흐린 날, 실버레이크가 안겨준 봄의 위로

오늘은 오랜만에 실버레이크를 산책하기로 마음먹었다.
엄마의 병간호와 과달라하라 선교여행으로 쌓인 피로가 몸을 무겁게 누르고 있었지만,
61도 흐린 날씨에 가볍게 내리는 이슬비가 문득 나를 밖으로 이끌었다.

“아, 이제는 그만 피곤해하고 좀 걸어야겠다.”

 

그렇게 발을 뗀 산책길에서, 나는 뜻밖의 풍경과 마주했다.

햇살 없이 흐린 날이었지만 실버레이크는 오히려 맑고 청명해 보였다.
5월의 실버레이크는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고, 그 자체만으로도 한 장면, 한 장면이 마치 영화처럼 아름다웠다.

 

오늘은 그 고요하고 따뜻했던 실버레이크의 풍경을 사진과 함께 담아보려 한다.
비 내린 뒤의 물빛, 언덕 위 주택들, 그리고 주말마다 피어나는 꽃 트럭까지.
이 산책은 단순한 걷기가 아니라, 내 안을 다시 채우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1. 실버레이크의 물 이야기와 역사

"실버레이크 저수지 인근에 설치된 LA 물의 역사 안내 표지판 – Zanja Madre 수로 이야기 포함" 사진
"실버레이크 저수지 인근에 설치된 LA 물의 역사 안내 표지판 – Zanja Madre 수로 이야기 포함"

 

실버레이크를 걷다 보면 LA의 물 공급 역사를 알려주는 안내판을 만날 수 있다. "The Story of WATER in Los Angeles"라는 안내판은 생각보다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물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의 시작은 17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페인 정착민들이 엘 푸에블로 데 로스앤젤레스(El Pueblo de Los Angeles)를 설립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물 공급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들은 로스앤젤레스 강에서 물을 끌어오는 '잔 하여 마드레(Zanja Madre)'라는 수로를 건설했는데, '어머니 수로'라는 뜻의 이 시스템은 도시의 첫 관개 시스템이었다.

 

1850년대에는 수로에 대형 물레방아를 설치하여 아빌라 스프링스(Abila Springs)에서 끌어올린 물을 오늘날 올베라 스트리트(Olvera Street) 끝에 있는 플라자의 첫 벽돌 저수지로 보냈다. 이 물레방아는 홍수에 취약했고, 진흙과 모래로 된 수로는 여러 번 무너지기도 했다.

 

19세기말에 이르러 잔 하여 시스템은 로스앤젤레스 시내와 외곽에 총 90마일(약 145km)에 달하는 수로망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도시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이 시스템은 점점 한계에 부딪혔고, 1904년 윌리엄 멀홀랜드(William Mulholland)의 권고로 결국 폐기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906년, 실버레이크와 아이반호 저수지가 건설되었다. 실버레이크는 수도 위원회 위원이었던 허먼 실버(Herman Silver)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아이반호는 1819년 월터 스콧 경의 소설 '아이반호'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이 저수지들은 당시 로스앤젤레스의 물 저장 능력을 크게 향상했고,

오늘날에는 지역 주민들의 휴식 공간이자 실버레이크 지역의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2. 흐린 하늘 아래, 고요한 물가의 풍경

"실버레이크 저수지 전경 – 흐린 날씨 아래 언덕 위 주택들과 고요한 물가의 풍경" 사진
"실버레이크 저수지 전경 – 흐린 날씨 아래 언덕 위 주택들과 고요한 물가의 풍경"

잔잔한 물결 위로 흐린 하늘이 그대로 비친다. 저 멀리 실버레이크의 언덕 주택들이 보이고, 햇빛이 강하지 않아 더 차분하고 깊이 있는 풍경을 만들어냈다. 물가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명상하는 기분, 마음속 생각들이 이 잔잔한 수면처럼 고요해진다.

3. 붉은 꽃이 감싸안은 스페인풍 주택들

"부겐빌레아가 가득 피어난 실버레이크의 조용한 스페인풍 주택가 거리" 사진
"부겐빌레아가 가득 피어난 실버레이크의 조용한 스페인풍 주택가 거리"

실버레이크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이 아름다운 스페인풍 주택들과 그것을 감싸 안은 화려한 부겐빌레아다. 붉은 지붕 타일과 하얀 벽, 아치형 창문의 주택들이 이어진 골목을 걷다 보면 흐린 날씨에도 밝고 활기찬 에너지가 느껴진다.

"Berkeley 교차로의 붉은 부겐빌레아와 하얀 스페인풍 주택, 흐린 날 산책길 풍경" 사진
"Berkeley 교차로의 붉은 부겐빌레아와 하얀 스페인풍 주택, 흐린 날 산책길 풍경"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었다. 차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이 역시 평범한 교차로가 아니다. 저 멀리 보이는 하얀색 스페인풍 건물과 보랏빛 부겐빌레아, 높이 솟은 야자수까지. 마치 유럽의 한 작은 마을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4. 주말이면 나타나는 꽃 트럭, 그리고 선물 같은 꽃다발

"실버레이크 주말 꽃 트럭 앞을 걷는 연인과 공원 풍경, 봄날의 따뜻한 장면" 사진
"실버레이크 주말 꽃 트럭 앞을 걷는 연인과 공원 풍경, 봄날의 따뜻한 장면"

 

주말이면 나타나는 꽃 트럭. 오늘은 특별히 다양한 꽃들이 가득했다. 간판에는 "$25 Bouquet Special"이라고 적혀 있고, "Feel free to pick and build your own floral bouquet" 문구도 보인다. VENMO와 Zelle로도 결제 가능하다는 안내도 친절하게 쓰여 있다.

이렇게 다양한 꽃들 중에서 엄마를 위한 꽃다발 하나를 골랐다.

"실버레이크 꽃 트럭에서 고른 화사한 꽃다발, 차 안에 조심스럽게 놓인 봄의 선물" 사진
"실버레이크 꽃 트럭에서 고른 화사한 꽃다발, 차 안에 조심스럽게 놓인 봄의 선물"

 

해바라기, 라넌큘러스, 유칼립투스, 튤립... 다양한 꽃들이 한데 어우러진 꽃다발을 차 안에 조심스레 놓았다. 흐린 날씨에 유난히 더 따뜻해 보이는 꽃들. 아픈 엄마에게 주려고 산 이 꽃다발이 엄마의 얼굴에 미소를 가져다 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섰던 오늘의 산책이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이 될 줄은 몰랐다. 흐린 날씨였지만, 실버레이크의 아름다움은 더욱 깊고 진하게 느껴졌다. 언덕길, 스페인풍 주택들, 고요한 물가, 그리고 꽃다발까지.

엄마가 아프고, 내 몸도 피곤했지만, 이렇게 걷고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다시 채워지는 기분이다.

 

"산책은 그저 걷는 게 아니라, 나를 다시 채우는 일이다."

 

🔗 함께 보면 좋은 실버레이크 이야기

실버레이크의 매력을 더 알고 싶다면, 아래 글들도 함께 읽어보세요:

 

※ 본 포스트에 사용된 모든 사진은 저자 본인이 실버레이크를 직접 방문하여 촬영한 이미지입니다. 저작권 보호를 받으며, 무단 도용은 금지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