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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현지 생활 과 소식

[2025 말리부 화재 르포] PCH에서 마주친 파괴와 생존의 경계선

by joibox 2025.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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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로 전소된 차량과 고사된 야자수가 해안가에 남아 있는 이미지
PCH(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 복구 구간에서 촬영한 사진. 산불로 전소된 차량과 고사된 야자수가 해안가에 남아 있으며, 현재 도로 및 주변 정비 작업이 진행 중인 모습이다.
같은 화재, 같은 동네... 왜 어떤 집은 살아남고 어떤 집은 재가 됐을까?
"왜 저 집은 멀쩡한데 옆집은 완전히 타버렸지?" PCH 드라이브 중 목격한 기묘한 광경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메모리얼 데이, 말리부 해안도로를 달리던 중 마주친 건 단순한 화재 흔적이 아니었다. 바로 옆집은 뼈대만 남았는데 한 집 건너뛰고 다른 집은 거의 손상 없이 서 있는 선택적 파괴의 미스터리였다.

이 현상의 비밀은 건축자재에 숨어있다. 같은 동네, 같은 화재 상황에서도 생존율이 극명하게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Leo Carrillo State Park Beach로 소풍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 내비게이션이 갈 때는 101번 고속도로를 안내했지만 돌아올 때는 PCH를 선택한 덕분에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2024년 말 말리부를 휩쓴 대형 산불 이후, 이 지역은 건축 과학의 생생한 실험장이 되었다.

pch 전신주와 담벼락 일부는 그을린 흔적,
도로에는 차량 통제용 콘이 설치되어 있으며, 일부 나무들은 벌목 중인 이미지
산불로 인한 피해 복구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며, 전신주와 담벼락 일부는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다. 도로에는 차량 통제용 콘이 설치되어 있으며, 일부 나무들은 벌목 중이다.

자연재해의 이중 타격

2024년 말의 악몽이 아직도 말리부 해안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력한 겨울 폭풍과 대형 산불이 동시에 몰아친 그 시기, 말리부는 이중 재해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고온의 화염과 바닷가 침식이 동시에 덮치면서 해안가 바로 옆 주택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갔다. 그런데 정말 기이한 건 같은 구간, 같은 조건에서도 집마다 정말히 다른 운명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범인은 바로 '건축자재'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자연이 만든 미스터리였다. 어떤 집은 완전히 재가 되어 기초만 남아있는 반면, 바로 옆 집은 거의 손상 없이 서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처럼. 같은 화재, 같은 바람, 같은 조건이었는데 도대체 무엇이 이런 극명한 차이를 만들어낸 걸까?

범인은 바로 건축자재였다. 현장에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완전히 사라진 집들의 공통점은 전통적인 목재 구조에 석고보드 외장이었다. 화염 앞에서는 종이처럼 무력했다. 반면 철골 구조에 내화 외장재를 쓴 집들은 마치 방화복을 입은 것처럼 버텨냈다. 가장 놀라운 건 지붕이었다. 아스팔트 싱글은 사탕처럼 녹아내렸지만, 금속이나 타일 지붕은 꿋꿋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불에도 여전히 홀로 남아 있는 건물 이미지
산불 피해로 일부 건물은 창문이 가려져 있고, 중장비가 대기 중이며, 해안을 따라 철제 펜스와 통제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 옆엔 차량과 장비 이동을 위한 안전 콘이 배치되어 있음.

🔥 완전 전소된 집들

  • 전통적인 목재 구조
  • 석고보드 외장재
  • 아스팔트 싱글 지붕

💪 살아남은 집들

  • 철골 구조 또는 콘크리트
  • 내화 외장재
  • 타일/금속 지붕

단지 몇 가지 자재 선택의 차이로 한 집은 재가 되었고, 다른 집은 기적처럼 살아남은 것이다.

법률의 잔혹한 허점

정말 기막힌 건 법의 함정이었다. 캘리포니아는 2008년부터 'WUI 건축 코드'로 산불 위험지역 신축 주택에 방화 성능을 의무화한다. 그런데 여기에 거대한 허점이 있다. 기존 주택은 해당 없음! 더 가관인 건 복구할 때마다 적용 기준이 바뀐다는 것. 어떤 집은 2010년 기준으로, 어떤 집은 2020년 기준으로 지어져서 같은 동네인데도 화재 저항력이 천차만별이다.

돈의 잔혹한 현실도 숨어있다. 내화재는 일반 자재보다 2-3배 비싸다. 결국 부자 동네는 살아남고 서민 동네는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자연재해가 평등하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탄 자국이 남은 야자수들이 바닷가를 따라 줄지어 있는 이미지
말리부 PCH 해안 구간의 산불 피해 현장. 탄 자국이 남은 야자수들이 바닷가를 따라 줄지어 있으며, 접근 통제를 위한 철제 펜스가 설치되어 있다. 일부는 고사 상태로 복구 작업 전까지 출입이 제한된 모습.

"우리 집은 멀쩡한데 왜 못 들어가죠?"

개인적으로 더 소름 돋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건 큰아이가 팰리세이드 하이스쿨을 졸업했기 때문이다. 학교도 화재를 겪었지만 운 좋게 완전 소실은 면했다. 그런데 정말 기괴한 건 그곳 친구 가족의 경험담이었다.

"우리 집은 멀쩡한데 왜 못 들어가냐고요?"

산불 당시 온 가족이 안전하게 피신했고, 기적적으로 집도 타지 않았다. 하지만 6개월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유가 충격적이다. 집이 안 탔는데도 '살 수 없는 집'이 되어버린 것이다.

벽을 긁으면 검은 가루가 떨어지고, 옷장을 열면 연기 냄새가 쏟아진다. 보험회사는 "거주 불가" 판정을 내렸다. 공기 중 독성 물질 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했기 때문이다. 전문 복구업체가 집 전체를 해체하다시피 청소해야 한다는데, 그 과정만 최소 1년. 결국 그 가족은 할리우드 힐에서 렌트 생활 중이다. 집은 있지만 집이 없는 기묘한 상황인 셈이다.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말리부는 부촌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임시 렌트 생활이라도 여유롭게 이어갈 수 있다. 아이 친구 가족도 오래 살던 집의 추억은 사라졌지만 길거리로 몰리지는 않았다. 할리우드 힐 렌트도 무리 없이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화재는 중산층과 서민 지역까지 확산되었다. 보험조차 제대로 받지 못해 트레일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모든 걸 잃고도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같은 자연재해를 겪어도 부자는 여전히 부자로 남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더 깊은 절망으로 몰리는 잔혹한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바닷가 바로 옆 건물은 불에 의해 구조물 대부분이 소실된 이미지
말리부 해안도로(PCH) 인근 주택가에서 발생한 산불 피해. 바닷가 바로 옆 건물은 불에 의해 구조물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현재 붕괴 방지를 위해 안전 콘과 경고 테이프로 통제된 상태다.

내가 만난 말리부는 이런 곳이었다

여행의 진정한 가치는 아름다운 사진을 찍는 데 있지 않다. 낯선 곳에서 예상치 못한 현실을 마주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 자신과 세상을 다시 보게 되는 데 있다. Leo Carrillo State Park Beach에서의 평범한 소풍이 PCH 드라이브를 통해 말리부라는 거대한 재난 실험장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바닷가 절벽 위로 올라가는 새로운 주택들, 무너진 기둥만 남은 잔해들, 그리고 폐허 속에서 겨우 복구 중인 집들... 이 모든 것이 건축과 법, 환경 그리고 사람의 선택이 얽힌 복잡한 기록이었다.

 

 

말리브에서 흔하게 보던 여유로움은 어디로 갔을까? 서핑하는 이미지

 

메모리얼 데이의 진짜 의미

메모리얼 데이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됐다. 이날은 단순히 휴일이 아니라 희생과 기억의 날이다. 말리부에서 만난 폐허와 재건의 현장은 자연재해로 잃어버린 것들과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살아있는 기념비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미스터리가 드러난다. 이것 또한 오늘날의 복잡다단한 사회가 만들어낸 또 다른 미스터리다. 자연은 평등하게 재해를 보내지만, 인간 사회는 그 고통을 평등하게 나누지 않는다. 메모리얼 데이에 떠난 그 짧은 드라이브가 말리부의 오늘과 캘리포니아의 미래, 그리고 우리 사회의 민낯까지 보여준 셈이다.

✅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지금도 말리부는 회복 중이다. 새로운 집들이 올라가고, 상처받은 자연이 천천히 치유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 건축은 생존이다 - 작은 자재 선택이 생과 사를 가른다
  • 법은 모두를 보호하지 않는다 - 기존 주택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 자연은 평등하지만, 피해는 계층을 가른다 - 경제력이 생존율을 결정한다

여행은 때로 우리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데려간다. 다음에 PCH를 달릴 때는 단순히 바다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삶의 무게와 회복력, 그리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도 함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 말리부 단골 식당들도 지금은 ‘임시 휴업 중’

이번 드라이브 중 또 하나 안타까운 사실을 알게 됐다.
자주 가던 말리부의 단골 식당들, 그 유명한 ‘Gladstones’와 ‘Duke’s Malibu’도 현재 임시 휴업 상태였다.

  • Gladstones Restaurant
    해변 바로 옆의 상징적인 레스토랑.
    다행히 큰 화재 피해는 없었지만, 현재 전면 리노베이션 공사 중이다.
  • Duke’s Malibu
    오션뷰 맛집으로 유명했던 이곳은
    거의 전소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이며, 새로 짓는 수준의 복구가 필요해 보였다.

이 식당들 역시 말리부의 재해 이후 변화의 일부가 되었고,
나의 소중한 추억의 장소들 또한 회복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깊게 남았다.


💬 여러분도 혹시 다녀간 적 있나요?

“Gladstones에서 마신 칵테일, Duke’s에서 바라본 돌고래 모습… 기억나시나요?”
지금은 임시 휴업 중이지만, 언젠가 다시 문을 열 날을 기다리며
우리의 추억도 함께 복구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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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리부 화재 이후 깨달은 것 – 우리 집 보험, 지금 제대로 들었나요?

2025년 초, 말리부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진 화재의 참상을 통해 주택 보험의 중요성을 되새겨보는 글입니다. 화재로 인한 피해 사례와 보험의 필요성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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